본심에서 멀어지기.

♣ Trackback to 「거리를 재는 것은 어렵다.Click」 by Ηellă(님).

   거리를 잰다는 이야기에 나름 이것저것 떠오르는 것들이 있어서 트랙백.

   지금 쓰려는 글은 Ηellă 님의 원글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기보단 그냥 거기에 자극받아 떠오른 잡생각들일 뿐이지만, 원글도 가슴에 와닿는다. 나도 좋아하는 디자이너를 MSN에 덥썩 추가해놓고 거리낌없이 인사도 하고 그랬었는데. 요즘엔 어렵다. 설레고 두근두근한 마음보다 확신이 안 서고 오해가 생길까 싶은 마음이 더 커져서 뻗치려 했던 손을 슬그머니 거두게 된다.

   나는 철이 좀 늦게 든 건지 아니면 천성이 푼수라서 그런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타인과의 거리 감각이 전무했다. 그러던 내가 상대방과 얼마나 떨어져 있어야 할까를 조금씩 고민하게 된 계기는 네코야나기 히사메(猫柳氷雨)라는 동인계 분의 ‘게시판에 글쓰기 매너’를 읽고서였다. 나랑 그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친구가 어느날 문득, ‘재밌으니 한번 읽어보라’고 던져줘서 읽게 된 거였다.

   혹시나 해서 방금 포털을 검색해보니 아직도 떠돌고 있네… 아무튼 그거, 읽는 이에 따라서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는 글이겠지만 내겐 무척 거북살스러웠다. 왜냐. 수많은 비매너 유형들을 나열해놓고 이런 거 하면 무례한 인간입니다, 분위기 파악도 못하는 새끼입니다, 꺼져, 죽어버려 하는 말들을 해놨는데, 그 유형들 중에서 나한테 해당되는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닌 거야 글쎄! 아무튼 그거 다 읽고 데미지가 어찌나 컸던지, 내가 대학 생활하면서 결석이란 걸 처음으로 해봤다.

   그 길로 몸져 누운 채, 무수한 생각들의 가지를 뻗쳐가면서… ‘가만, 그 놈이 나한테 글쓰기 매너 같은 걸 보여준 저의가 뭐지? 자기 방명록에 접근하지 말라는 무언의 촉구?’에 이르게 되자, 그때부터는 다른 사람한테 말 걸기가 어렵고 조심스러워졌다.

   언젠가 마린블루스 웹툰을 보니 사람의 속마음을 카카오99%에 비유했더라. 탁월한 비유로고. 혹시 카카오99%의 맛을 경험하지 못한 분이 여기 계시다면 얼른 가까운 편의점이나 마트를 방문해 잡숴보길 바란다. 지금부터 그 전기충격 같은 맛이 파블로프의 개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할 참인데, 그 맛을 못 느껴봤다면 이 글을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건 농담이고.

   속마음99%가 지닌 쓴맛의 비결은 뭘까, 하는 걸 생각해봤다. 남의 의중을 알았을 때의 그 쓴맛… 당연히 내 기대와는 어긋나는 생각들이 쓴 풍미를 자아내는 주성분이겠지. 그러고 보면 ‘싫어하는 것’에 대한 엇갈린 견해도 쓴맛의 주요한 원인일 것 같다. “나의 뭐뭐는 그러치 않아악~!” 하는 절규가 어떤 상황에서 나오던가 말야.

   또, 가령, 나는 개인적으로 예수라는 캐릭터가 홍상수 감독 영화에 나오는 남자들보다 더 싫단 말이지. 그런데 내 친구는 예수 광팬인거라. 평소에는 그냥 속마음을 묻어둔 채 행복하게 잘 어울려 살았는데… 어느날 독실한 신자 친구가 내 가방 속에 있던 버트란트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를 믿지 않는가』를 발견하고 마는 것이다. 그 순간 달콤했던 우리 사이를 카카오99%의 강렬한 맛이 제압한다! …쓰고 보니 무슨 공포 영화 시놉시스 같다. 그렇다면 제목은 ‘카카오99% 먹고 울 적에’ 정도가 적당하겠다.

   어차피 뭐, 어떤 부분에서도 상충하지 않는 소울메이트란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성배이고… 장기 이식에서 도너와 레시피언트의 거부반응이 전혀 없는 경우를 제로 미스매치라고 하는데, 실제로 제로 미스매치인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이의 인체는 다른 누군가의 장기에 대해 작든 크든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그래서 장기 이식술을 받은 사람은 평생 면역억제제를 취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런 불완전한 삶은 타인과의 이물감을 적당히 적당히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일반적인 삶의 모습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쓴맛으로부터 체득한 사람 간의 거리 두기는 점점 더 익숙해져만 간다. 그리고 타인과의 거리를 명확히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더욱 더 아찔한 고독이 엄습해온다. 나는 죽을 때까지 혼자다, 하고.

   그러한 고독과 직면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지혜로워 보인다.

   허나, 나는 그 반대다. 고독을 몰아내기 위해 내 속마음을 접고 또 접는다. 속마음 차폐용 레퍼토리들. “사장님, 나이스 샷입니다요. 딸랑딸랑.”, “야아, 넌 나이를 거꾸로 먹냐? 넌 이제부터 귀뚜라미 보일러다. 거꾸로 먹으니까.” 추켜세우기는 추켜세우기를 부르고 상승작용. 근데 본심이 안 나오니 영양가는 별로 없다.

   그렇게 구멍난 배에서 물 퍼내기를 하다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돌아오면 다시금 서서히 고독에 잠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내 다큐멘트에, 싸이월드에, 블로그에 접고 또 접어두었던 독을 뱉어놓고. 며칠 지난 뒤, 으힉 드러, 누가 여기다 토했어, 그러면서 치우고…

by 보리차 | 2008/03/30 11:36 | mono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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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3/30 12:0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린츠 at 2008/03/30 12:56
헬라님 블로그에서 날아왔습니다.

적으신 글이 정말 사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요ㅜㅜ..

Commented by 집없는 달팽이 at 2008/03/30 13:45
속마음을 접고 또 접고.. 그리고 블로그에 토해내고... 그런데, 더러운 줄 알면서두 전 치우지도 않는다는 ㅡㅡ;; 냅둬~ ^^

거리를 재는 사람과는 똑같이 거리를 재고, 거리 재는 거 싫어하는 부류랑은 안재고.. ^^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욤, 포스가 쎈 사람에게 빨려들어가게 되어 있더라는. 거리 재는 넘들도 강적을 만나면 누가 하라고도 안했는데, 있는 거 없는 거 다 꺼내놓고, 꺼이 꺼이 ^^

기운 차리삼. 너무 접지 마시구.. ^^
Commented by 보리차 at 2008/03/31 07:32
비공개 2008/03/30 12:00님// 카카오 99%... 나머지 1%는 회사의 양심;;;ㅋㅋㅋㅋㅋㅋ 아니 이런 명문을 왜 비공개로 하셨습니까요.ㅠㅠ

음... 그러셨군요. 저도 알아주는 푼수였습니다. 이거 명함 교환이라도 해야할 것 같은 분위기?ㅋ 근데 저는 제 말이 다른 사람한테 상처주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해요. 흐으. 어때요, 제가 더 세죠?

린츠님// 잘 와주셨습니다! 으,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떤 방식으로 처신하는 게 최적의 해법일지는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ㅠㅠ

집없는 달팽이님// 말씀 들어보니 하긴, 상황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지요. 상대에 따라서도 많이 다르고. 요즘 혼자서 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꾸 기분이 쳐지네요. 매번 북돋아 주셔서 고맙습니다...ㅠㅠ
Commented at 2008/03/31 18:4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보리차 at 2008/04/01 15:15
비공개 2008/03/31 18:43님// 예에... 생각하신 바를 이렇게 남겨주셔서 고마워요. 저는 뭐랄까, 비공개 2008/03/31 18:43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나도 몰랐어요. 생각이 무척 깊으시군요.

듣고 보니, 제가 친형처럼 여기던 어떤 분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덧글로 쓰기에는 너무 긴 이야기라서 아쉽지만 접어둬야겠네요. 언제까지나 의지가 될 것 같던 사람에게서 별안간 그 마지노선이란 걸 발견할 때마다 냉정한 현실에 당혹감을 느끼지요. 아무리 친밀한 사람과도 이해관계가 겹치게 되면 속마음을 숨기고 협상에 돌입해야 하는 그런 일이 생기곤 해요. 그럴 때마다 뼈저리게 외로워요.

그런데... 님 블로그에 있는 동영상 보고 자지러지게 웃었습니다.ㅋㅋ 블로그 링크 하려니 add link가 없는데 일부러 제거해놓으신 모양이네요. 열공하세요!
Commented by 아밀리아 at 2008/08/27 07:44
적당히..를 배우고 싶은데 마음만치 쉽지 않아요.
Commented by 보리차 at 2008/08/27 09:20
그래서 '적당히'의 선을 조금은 넘어서도 괜찮은 애인이라든지 가족이라든지 하는 관계가 인간에게는 필수불가결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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